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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2019년 2월호

SK건설 구성원들이 여행설계자가 되어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여행책에도 안 나오는 가성비甲 특급 정보들을 공유합니다.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 나만 아는 핫한 관광지, 초저가이거나 럭셔리하거나! 전국 방방곡곡, 글로벌 life를 사는 건설인들이 소개하는 여행 큐레이션! 이번 호에선 성창원 프로의 칠레 여행기를 통해 칠레로 떠나보실까요?

사막과 바다를 품은 칠레 북부 조그마한 어촌마을에서 인근 구리광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석탄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2년 6개월간 근무했습니다. 프로젝트 품질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 칠레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빰삐노, 칠레 북부 모진 내륙사막에서 초석을 캐며 살았던 Pampino의 삶은 우리나라의 아버지 세대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 우리의 세대는 모진 내륙사막의 혹독함과 열악함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빰삐노'가 되었지만, 지금도 더 잘살아보려 낯선 오지에 힘든 발걸음을 내딛고 있을 많은 구성원이 있습니다. 처음 내딛는 걸음의 막막함을 털어버리고 한 백년전쯤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함께 '행복한 빰삐노'가 되어가는 쩐내투어를 떠나보지 않으시렵니까?

8월의 크리스마스, 칠레 2박3일 여행코스

메히요네스 arrow 안토파가스타 arrow 5번국도 arrow 코피아포 arrow C327 arrow C351(Ruta del Desierto) arrow Mina San Jose arrow C351 arrow 5번국도 arrow C314 arrow Caldera arrow C354 arrow Baiha Ingles arrow C360 arrow 5번국도 arrow Aeropuerto Desierto de Atacama arrow 렌터카반납 arrow 공항버스 arrow 코피아포 arrow 안토파가스타 arrow 메히요네스

큰맘 막고 큰 배낭을 메고 남미를 왔으니 우선 페루 쿠스코를 들러 오얀따이땀보역에서 기차를 타고 솟아오른 산과 낮은 계곡을 따라 마추피추로 향합니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아름다운 우유니 사막과 하늘과 맞닿는 소금호수에서 멋진 사진을 남기고 그마저도 추억이 되는 고산병에 시달리며 국경을 넘어와 칠레의 아름다운 산페드로 아타까마 사막의 정취를 맛보게 되겠죠. 여건만 된다면 돌아가는 길에 쿠바 아바나에 들러 Havana club의 화이트 럼주에 소다와 레몬을 넣고 민트와 설탕을 넣은 Mojito를 마시며 “촤촤촤”를 들으며 체게바라의 아름다운 서사시 같은 낭만적인 혁명이야기를 즐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만치 않았을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 산페드로 아타까마에 발을 디디셨다면 순간 여러분은 칠레의 Norte Grande, 광활한 북부칠레북부 타라파카와 안토파가스타 지방을 포함한 지역에 에 발을 들이고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경이로운 페루와 아름다운 볼리비아와 불어오는 모랫바람 조차도 낭만적인 아타까마 사막에서 기억을 잠시 접어두고 가물가물거리긴 하지만 교양있는 인류학적 소양을 장착한 후 숨을 고르고 자세히 다가가 들여다본다면…운이 좋다면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다가와 “Hola como esta?안녕 잘 지냈어”라며 인사를 건네는 제가 지금도 애타게 찾고있는 검게 탄 얼굴에 우락부락한 근육의 Salitre살리트레,칠레 초석을 캐는 Pampino빰삐노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디디고 선 발밑에 여전히 무수히 묻혀있는 Salitre를 예전처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칠레와 페루와 볼리비아는 천연비료와 화약의 원료인 Salitre를 차지하기 위해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전쟁의 승자인 칠레는 안토파가스타와 이끼께 아리카, 지금의 Norte Grande를 차지해 지천에 널린 Salitre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저 먹고 살아가고 돈을 벌기 위해 페루사람, 볼리비아 사람, 칠레사람, 중국사람들이 Norte Grande Pampa내륙사막 의 Oficina초석공장로 몰려들고 한때 이들이 캐낸 Salitre는 칠레의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기도 하죠. “Pampa내륙사막에서 salitre를 캐던 사람” Pampino는 1907년 산타마리아 학교의 비참함을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겪어낸 칠레 근대사의 격정적인 저항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들도 그저 잘살아보려 다른 선택지 없이 Norte Grande에 발을 디뎠던 보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907년 하버-보슈가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한 이후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합성질산비료는 빰삐노를 하나둘씩 기억에서 빠르게 흔적없이 지우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잊혀지기 시작합니다. 폐쇄된 오피시나로 관광버스는 호기심 어린 즐거운 손님들을 실어 나르고 있지만 대공황과 무관심에 사라진 Pampino를 알아차리는 사람…글쎄 많지는 않겠죠?

그래서 시간은 흘렀지만 칠레의 예전 최북단이었던, 지금은 칠레사람들의 월급봉투인 구리와 백금을 분주히 캐내는 코피아포에서 내가 찾던 빰삐노와 연결된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Mina San Jose로 떠나는 5번국도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곳 광산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내려 불렀던 “로스 피르키네로스” 비참한 자들를 만나기 위해 가는 이 여정을 “쩐내나는 비참한 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비참한 여행”의 시작답게 한덩어리의 밥과 프렌치 프라이드, 볶은 양파와 계란한장이 얹혀진 “Bistec a lo pobre 가난한 노동자의 스테이크”를 한 접시 비우고, 출발이후 17시간동안 유일한 맛집 메뉴가 되었던 컵라면과 생뚱맞은 냄비 하나를 짐속에 챙깁니다. 질기고 질겨 잇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가난한 노동자의 스테이크를 혀로 뽑아내며 자 이제 가자! 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8월 28일 오후 10시 10분 코피아포로 떠나기로 되어 있는 풀만버스회사의 장거리 2층버스는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은 29일 새벽 한시 안토파가스타의 버스터미널을 떠나 5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12개의 좌석이 있는 장거리버스의 1층 “Salon Cama우리나라의 우등버스좌석” 에 자리를 잡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지만 바다와 나란한 사막을 혹은 사막만을 가로지르는 풍경에 이내 지루해지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이젠 잠을 자야해! 하지만 친절하게도 차내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디지털 속도계의 알고리즘은 80km가 넘을 때 마다 “삐익!삐익!” 요란한 소리를 지르도록 제어하고 있고 동시에 교양없이 브레이크를 밟아 주시는 운전기사님! 그럴때마다 “덜컥 덜컥” 잔뜩 힘이 들어가 끙! 소리를 내게 만드는 관성에 저항하는 안전벨트의 압박은 눈을 감은지 채 1시간도 채 되지않아 뒤목으로부터 시작한 통증을 허리와 다리로 골고루 내려보내 이내 불편함에 온몸을 배배 꼬이게 만들고 맙니다.

온화하지만 쌀쌀한 사막날씨와 안개 자욱한 코피아포와의 첫인사 후 맞은 편 눈길을 끄는 뭔가에 이끌려 다가갑니다. 불편한 버스에 갇혀 쪼그라든 무릎을 달래며 다가가 보니 광채가 가득한, 아름다운 선이 흘러내리는 동상이 보이고 거기에는 ESTATUA POR LA PAZ MUNDIAL세계평화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En el nombre pueblo Chino 중국국민의 이름으로 DEDICADO AL PUEBLO CHILENO 칠레국민께 바칩니다 Conmemorando el exitoso rescate de los 33 mineros 33명의 광부의 성공적인 구조를 기념하며... 지도를 따라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멈춘 섰던 그곳, 2010년 8월 5일 무너진 광산에서 고립되었던 33명의 “로스 피르키네로스” 비참한자들 광부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Mina San Jose산호세 광산”의 초입에 무사히 잘 도착한 것 같습니다.

코피아포에 발을 딛자 마자 짧은 일정에 다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서둘러야 해!
렌터카 회사를 지키던 강아지에게 “잠깐만 좀 비켜줄래 Por Favor?please” “그래 고마워” “안녕” 삼단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나보는 수동기어에 허걱! 쇠를 갉아먹는 쇳소리와 함께 몇 번을 꿀럭거리더니 “외국놈이 차를 다 부시는구나!” 못마땅한 표정의 직원들을 뒤로 한 채 이내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와 C327 사막도로를 찾아 달려갑니다 오전 9시, 곧 걷힐 줄 알았던 안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안개는 더 짙게 몰려옵니다. 자정 무렵 공동묘지에서 귀신을 만난 것도 아닌데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듯한 고요함에 순간! 차가운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또르륵” 내려오듯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내려옵니다. 다시 냅다 달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거뭇거뭇한 산들이 지나가고 조금씩 보이던 풀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고 익숙한 예쁜 모래언덕들이 나타나면 C327 지선을 오른쪽에 두고 서쪽으로 뻗은 C351 사막도로로 들어섭니다. 고운 노란색의 모래와 보라색의 작은 꽃들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바람이 모래에 새긴 물결과 파란하늘도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오죠.
“어서 와! LOS33을 만나러 온 동양인이구나… Bienvenido!환영해! “

내가 바로 Jorge라네…툭툭! 소심히 어깨를 건드리는 기척에 뒤돌아보니 하얀 수염을 기른, 빨간 옷에 아랫배가 도드라진 파란색 모자를 쓴 왠 낯선 할배가 서 있습니다. 누..,누구시죠? 저는 담배꽁초를 버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들어가지 마라는 곳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요…
이봐 Amigo친구 내가 바로 Jorge Galleguillos라네. 여기 무너진 광산에서 12번째로 구출된 내 이름과 사진이 여기 보이지 않은가? 호르께 할배는 광산에서의 노동과 시간의 세례가 남긴 거친 손을 이름 밑에 가져다 대며 소심하게 “내가 Jorge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왕년엔 말이야!”.. 당연히 이곳에 들를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호기어린 700m 지하에서의 탈출담과 이런저런 신난 희망의 이야기 보따리를 기대했지만, 뭐 할배도 그러고 싶었겠지만…오늘 반나절 넘게 사람들을 기다리다 고작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자그마한 동양인 한사람을 처음 만났을 뿐 이제 발길이 끊어진, 예전 같지않은 잊혀짐이 아쉬워 무기력해진 호르께 할배는 더 이상 광부가 아닌 거기에 머룰면서 빰삐노처럼 잊혀지길 기다리는 2010년 8월 5일의 San Jose 광산의 증언자로 살아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2010년 8월 5일 14:05 33명의 광부를 가둔 채 무너진 산호세 광산에는 *인간을 혼란에 빠트리고 믿음을 앗아가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조나단 프랭클린의 “the 33”에서 인용” 8월 22일 광부들의 흔적을 찾아 땅속을 파내던 드릴에 “Estamos bien en el refugio los 33우리 33명은 대비소에서 살아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딸려 올라옵니다. 강력한 드릴비트와 압축공기로 파 들어간 73cm의 구조용 터널은 광산이 무너진 후 69일째 되던 날 땅속과 연결됩니다. 2010년 10월 12일 작업팀의 foreman이었던 호르께 할배는 09:31분 Finix 2호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같은 날 21:55 마지막 광부가 지상으로 구출되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목이 주목되었던 황량한 사막의 산호세 광산의 희망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호르께 할배와 함께 사진을 찍고 세상에 다시 나온 사진속의 할배가 그랬듯 머리위로 엄지척! 마지막으로 허리를 90도로 꺾어 공손히 존경의 인사를 합니다

산호세 광산을 빠져나와 다시 C351 사막도로를 달려갑니다. 17시간 내내 찬물을 부어 불려 먹었던 컵라면 하나가 고작이었던, 긴장과 호기심에 무디어 졌던 뱃속에서도 신호가 오기 시작합니다. 5번국도를 거쳐 C314도로로 갈아타고 조금을 달려 사막과 바다가 있는 Caldera깔데라를 둘러본 후 해변이 아름다운, 로레나가 살짝 귀뜸해 준 하얀 모래의 Bahia Inglesa바히아 잉글레사 로 향하는 C354로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이제 곧 밥을 먹을 수 있겠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은 칠레의 Norte Grande 광활한 북부의 혹독한 내륙사막 초석광산에서 Salitre를 캐고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남쪽에서도 여전히 뾰족한 수가 없었던 광산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구리와 광석을 캐고 있습니다. Salitre와 구리가 일으켜 세운 칠레 사람들의 삶, 칠레 북부사람들은 “흥망성쇠ange y caida”의 역사라고 표현합니다. 빰삐노와 산호세 광산의 los 33의 공통점도 잊혀져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겠죠? 누군가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때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저항의 상징으로 어느 한편에서는 감당못할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의 인간승리로 그려지고 있겠지만, 그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가족들과 더 잘살아보기 위해 혹독한 사막과 광산을 감내했던 보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코피아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달빛과 조명아래 평화의 상은 아침보다 더 신비롭게 보입니다. 코피아포 거리의 사람들은 분주하고 저는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8월 29일 23:30분 다시 안토파가스타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습니다. 같은 날 2010년 8월 29일 산호세 광산이 무너진 후 25일째, 갇힌 광부들은 지상과 간신히 연결된 작은 드릴 구멍을 통해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나누게 됩니다. 안토파가스타로 출발하기 전 서둘러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합니다. 문득 나는 구속되어 있지도 않고 내륙사막의 혹독함과 광산의 열악함을 애써 견디지 않아도 되는군요.
버스에 오르다 잠시 멈추어 고개를 돌려보니 사막은 찡긋 인사를 건냅니다 먹고 살기 위해, 가족들과 더 잘살아보기 위해 혹독한 사막과 광산을 감내했던 보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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