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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2017년 12월호

추운 겨울, 포장마차에서 들이켜는 오뎅 국물 한잔, 도착과 동시에 파란불로 바뀌는 횡단보도의 신호등, 나른한 오후에 벤치에 앉아 쬐는 따뜻한 햇빛에 행복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행복을 결정짓는 필수 요소는 건강, 가족, 재산이었습니다. 어떤 행복이든 이 세 가지 조건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했기에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행복의 풍경은 자산가의 호화로운 생활이나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욜로(Yolo), 미니멀라이프 등 다양한 라이프트렌드가 확산되며 행복에 대한 정의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재산이 없더라도, 몸이 아프고, 혼밥이 일상이 된 1인 가구라도 현재 자신의 생활에서 보장된 만족과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논리입니다.

1986년, 일본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저술한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는 흥미로운 신조어가 등장합니다. ‘小確幸(しょうかっこう’ 우리말로 ‘소확행’이라 해석되는 이 단어는 하루키가 만든 것으로 서랍을 열었더니 가지런히 개어진 속옷이 가득 차 있거나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처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소확행은 일본 버블경제 붕괴 후 혼란스러운 경제상황 속에서 소소하더라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해 스스로의 자아와 희망을 찾으려는 작가의 심리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적 압박과 부담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 3포 세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과 매우 흡사한데요, 최근 미니멀라이프나 욜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탕진잼처럼 ‘실리주의적 라이프문화’가 주목 받게 된 배경도 암울한 현실에서 불안정한 미래의 희망을 막연하게 기대하기보다는 소소하더라도 확실한 즐거움을 빠르게 누리며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욕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비를 줄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살아가는 심플 라이프

You only live once! 한번뿐인 인생,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청년 직장인들의 가치관

저렴한 가격의 물건들을 구입하며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일컫는 소비문화

소확행을 창시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에 접하는 소확행은 오래된 레코드판을 부드러운 천으로 깔끔하게 닦아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효리네 민박’으로 제2 전성기를 맞이한 가수 이효리는 텃밭을 가꾸거나 직접 재배한 채소로 한 끼의 자연식을 차리는 등 소소한 일상을 통해 소확행을 만들어가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소확행은 무엇일까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http://www.youtube.com)는 뮤직비디오,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일상 비디오 등 전세계 사람들이 업로드한 동영상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상을 클릭하면 하단에 제공되는 ‘연관 동영상’ 서비스는 ‘꼬리물기’ 형식의 흥미로운 영상을 계속 노출해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하는데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캐롤’을 찾아보다가 12월에 듣기 좋은 감미로운 음악을 발견한다거나, 8,9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영화나 가요를 접하며 회상을 즐거움을 밤새 느껴보는 것도 소확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브루클린에서는 100미터 내외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100미터 마이크로 산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늘 똑같아 보이던 일상의 풍경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한두 장씩 늘어나는 꽃잎의 수, 우유팩이나 하수구 속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식물의 모습이 선사하는 일상의 변화나 사소한 낯설음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변화에 잠식된 현대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행복입니다.

대형마트의 경우 오후 8시가 되면 당일 조리한 즉석식품을 30~50%까지 할인해 판매하는데요, 마트 폐점이 가까워진 10시경에 방문하면 80%까지 파격 할인된 식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봉투에 음식을 가득 담아온 뒤 테이블에 가지런히 차려놓고 시원한 맥주 한잔 곁들이며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즐거움, 한번 느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한편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 샵에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성비가 뛰어난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입니다. 최근에는 미니 전구나 스타일리시한 액자, 포인트 벽지 등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해 집안을 꾸미며 행복을 찾는 ‘홈퍼니싱족’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감성 힐링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카페들의 컨셉도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서울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루프탑 카페에 앉아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혹은 커피나 케이크를 보기 좋게 디스플레이해 예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소장하는 것도 소확행이 될 수 있지요. 또한 12월은 서울의 거리가 일루미네이션으로 반짝거리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밤에 피는 꽃 일루미네이션은 매일 접하는 회사 앞 풍경을 뉴욕 거리처럼 화려하게 바꿔줄 것입니다.

스웨덴의 리서치 기업에서 세계 57개국 직장인 20만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직장인의 행복지수는 놀랍게도 49위였습니다. ‘월급 로그아웃, 직장살이, 야근각, 쉼포족, 사축’ 등 자조적인 신조어에서 볼 수 있듯이 유리지갑, 계속되는 야근과 실적강조, 지나친 경쟁 유도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행복지수 향상을 위한 정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과 개인 생활의 밸런스를 유지하라, 건강을 지키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와 같은 관념적 조언이 계속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행복지수는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는데요, 이에 대해 스카이즈가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소확행’을 통해 나름의 즐거움을 찾자는 것입니다.

영화 ‘남극의 쉐프’에는 평균기온 -54℃의 남극 기지에서 생활하는 대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시종일관 극적인 사건이나 변화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는 대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가족과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전화를 걸면 늘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행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소확행은 자본주의의 경쟁사회에서 남과 비교하며 우위를 차지했을 때의 만족을 행복이라 착각했던 우리들을 꾸짖고, 진정한 행복이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운 뒤 이를 꾸준히 추구하며 하나씩 성취해갈 때의 기쁨과 보람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