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457년경,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졌고, 이 작은 땅 위에서는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치며 반만 년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시간이 흐른 지금, 한때 한반도를 호령했던 각 국가의 찬란함을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간 쌓아온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 문화는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해 있다. 오는 10월 3일은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개천절이다.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까지…
개천절을 맞이해 한반도 역사의 굵직한 한 축이자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난 역사의 개국 이야기를 준비해보았다.

고조선은 BC 2333년 건국되어 BC 108년까지 존재한 한국사 최초의 국가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 : 기이 편>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군왕검 신화이다.

고조선 건국 전 시대에는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했다. 단군으로 추정되는 고조선 최초의 지도자는 주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권력을 강화, 만주 요령 지방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고조선을 건국했는데 이 과정에서 집단의 시조설화가 건국설화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설화를 살펴보면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인간세계로 내려와 인간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곰과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 시대가 농경을 중시하는 사회였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분화되어 있고,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연합했다는 사실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 고조선은 기원전 194년 철기 문화가 확산되며 세력이 확장되고, 한반도 남부 지방과 중국 한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등 강국으로 성장해갔다. 그러나 고조선의 성장을 견제한 한나라의 공격으로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한국사에서 삼국시대라 하면 보통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공존하던 4~7세기 중엽 무렵을 의미한다. 삼국은 신라 BC 57, 고구려 BC 37, 백제 BC 18 순으로 건국되었으며 약 700여년간 함께 발전하고 대립하며 성장해왔다.

신라는 박혁거세에 의해 영남 지방에 세워졌는데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일화가 지나치게 신격화되어 그 배경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그가 중국 출신임을 암시하는 기록이 있다.) 가장 먼저 건국되었지만 신라는 국토가 산맥으로 둘러싸인 데다 왜의 잦은 침략으로 삼국 중 발전이 가장 더뎠다. 그러나 22대 왕인 지증왕 시대에 우경농사를 계기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고 경제적 기반과 정치적 제도의 틀을 견고해지며 신라는 천연의 역사를 이룬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고구려는 당시 주몽이 끌던 부여족의 한 갈래와 압록강 중류의 토착민이 함께 세운 나라다. 고구려에도 시조인 주몽을 신격화한 ‘고주몽전’이 전해지는데, 알에서 태어나 7세부터 직접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다는 내용의 주몽 설화와 걸맞게 고구려들은 일찍이 기마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강인성과 활발함이 남달랐으며 중국과의 투쟁을 통해 점점 강대해졌다. 특히 고구려에는 정복 사업과 민심안정을 동시에 꾀하는 유능한 군주들이 많았는데 광개토 대왕이나 장수왕 등이 그 예다. 그러나 642년 연개소문에 의해 임금이 사해되고 방만한 정치 행정 등이 이어지며 결국 80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백제는 기원전 37년 한강 유역에서 건국되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은 고구려 동명왕의 삼남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문인지 백제는 고조선과 삼국 중 유일하게 화려한 건국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백제가 자리한 한강 유역은 철기 문화와 농경 기술의 수준이 높은 데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국가의 발전이 가장 빨랐다. 특히 4세기경 근초고왕에 의해 마한 세력 통합, 가야 지역의 세력관 확장 및 해상력 장악 등 안팎으로 국력이 강화되며 백제는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국제적인 나라로 발전했다.

고려는 918년 건국되어 1392년까지 474년간 한반도를 집권한 나라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송악(지금의 개성)지방의 호족으로 원래는 궁예의 부하였다. 그러나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운 후 포악한 성격과 공포 정치로 신하와 백성들의 신뢰를 잃어가자 왕건은 결국 홍유ㆍ배현경ㆍ신숭겸ㆍ복지겸ㆍ박술희 등과 모의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

당시 고려가 건국되며 어지러운 후삼국을 형성하고 있던 한반도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고려는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 등을 통해 왕권이 강화했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되었다. 또한 중국, 일본 심지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까지 무역을 하며 국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12세기 무렵 권력투쟁과 내분이 격화되어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세기 원나라의 침입으로 전 국토가 피폐해지며 국력이 급격히 쇠퇴했다. 1백년간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는 31대 공민왕이 즉위해 왕권을 다시 세우고 국력을 강화시키고자 했지만 그의 정책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권력의 중심인 왕권이 무너지고 민심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갔다. 이에 무신이었던 이성계와 그의 책사였던 정도전 등이 주도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1392년에 멸망해버렸다.

‘동국여지승람’에서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라고 기록한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었다. 14세기 후반, 고려왕조는 권문세족의 세도정치와 왕권쇠퇴,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그야말로 풍잔 속 등화와 같은 상황이었다. 이때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해 등장한 무장 이성계가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는 신흥사대부 세력과 힘을 합해 조선 왕조를 세웠다. 이에 앞서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으로 정치적 실권을 잡은 뒤, 전제 개혁으로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국가 재정과 신흥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다졌다. 특히 고려 귀족사회에서 조선의 양반관료제로의 전환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시각의 진전을 안겨주었다.

특히 15세기 중반 조선조의 왕권이 강화되고, 양반관료 재상중심의 지배통치구조가 정비되면서 국가 재정이 제도적으로 충실해졌는데 이에 따라 민생의 안정과 권농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책을 써서 인구와 농지가 증가,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다.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의 외침이 잇달아 발생하고 19세기말 제국주의 침략수법을 익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500년의 찬란한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