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말콤 글래드 웰이 저술한 <아웃라이어>에 의하면 한 분야를 통달하는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1만 시간은 그 사람의 선천적인 재능이나 주어진 환경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공이라는 보상을 선사하는데요,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1만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목표로 하며, 어떤 노력을 얼마만큼 열정을 다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따뜻한 프로페셔널 자세인 ‘내 일 알기’와 일맥상통하며, 우리 구성원이 글로벌 최고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신념이기도 합니다. 5월에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 ‘내 일 알기’에 대한 명사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SK건설인이 가져야 할 내 일 알기란?

고객과 기술 및 시장에 대하여 뛰어난 전문지식과 이해를 가지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며, 업무의 성과목표를 알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잘 알고 있음

Global 최고지향

본인의 현재 역량을 업계 최고 수준과 비교해 정확히 인지하고 그 수준을 올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성과 달성 방안 도출

항상 업계의 변화를 파악해 경쟁사보다 나은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동료들과 공유한다.

전략과 업무의 연계

당사의 전략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와 연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설정하고 수행한다.

명사들의 내 일 알기

“답은 철저한 조사에서 구해진다”

1951년, 미국 유명 잡지인 ‘뉴요커(The New Yorker)’에 한 장의 광고가 게재되었습니다. 말끔한 흰 셔츠차림에 한쪽 눈에는 안대를 착용한 남자가 고급 옷 가게에서 치수를 재고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이 광고가 노출된 후 광고 제품인 셔츠는 모든 재고분이 완판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안대를 낀 남성의 모습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스토리를 광고에 투사해 해당 브랜드 고유의 이미지와 특성을 소비자에게 심어주고 선호도를 높여주는 이 같은 광고 전략은 ‘현대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성적 부진으로 인한 대학 중퇴, 요리사, 세일즈맨, 농사가 전부인 초라한(?) 경력… 마케팅에 대해 문외한이던 그가 현대 광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늘 업계 동향을 주시하며 소비자와 시장의 니즈를 철저히 파악해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세일즈 시절 우연히 세일즈맨을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하며 광고계에 입문한 데이비드는 당시 런던의 광고업계가 호황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앞서가는 광고 기획을 공부하기 위해 이민을 떠나는데요, 그 유명한 소비자 조사회사 갤럽과 인연을 맺으며 갤럽의 세심한 조사기법과 사실반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데이비드의 원천이 되어준 셈이죠. 데이비드는 광고 기획 전 브랜드를 면밀히 조사하고 소비시장을 분석하는 등 과학적 광고 전략을 추진했는데 이 같은 그의 성향을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 자동차 광고 제작을 맡게 된 데이비드는 언제나처럼 자동차 시장의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한 자동차 잡지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다양한 속도로 주행하는 동안 차 안에서 들리는 소음량을 측정하는 내용이었는데요, 그 중 ‘신형 피어스 애로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리는 시계 소리입니다’라는 구절에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죠. 여기서 탄생한 광고 카피가 자동차 광고 헤드라인의 전설로 손꼽히는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에서 나는 가장 큰 소음은 바로 시계 초침소리’입니다.

한편 데이비드는 자신의 광고 원칙을 가이드로 제작해 후배들에게 교육시켰는데요 특히 그의 30년 광고 노하우가 집약된 ‘매직랜턴(Magic Lantern)’은 광고시장을 철저히 분석해 광고주와 소비자가 요구하는 카피 작성법, 영상 광고 구성법, 콘셉트 도출법 등이 수록되어 있어 오늘날에도 크리에이티브인들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성공은 끝없는 노력과 시도 끝에 이루어진다”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인 초콜릿! 지금이야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 초콜릿은 왕족이나 귀족들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상류층의 전유물을 대중의 간식으로 만든 이는 밀튼 허쉬라는 사람인데요, 여러분도 잘 아는 허쉬 초콜릿의 설립자입니다.

밀튼 허쉬는 기업에서 꾸준한 노력과 도전, 실행을 강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세 번의 사업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초콜릿의 대중화를 이뤄낸 노력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10대 시절, 사탕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두 차례나 연이어 실패했습니다. 보통 동종 분야에서 두 번 이상 실패를 겪으면 포기하거나 방향을 틀기 마련인데 밀튼은 제과 산업에 대한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꾸준히 학습하고 지식과 방법들을 습득했습니다. 덕분에 1886년에 시작한 캐러멜 제조 회사는 성공시킬 수 있었지요.

밀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과산업의 동향에도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는 1893년, 만국 박람회에서 독일제 초콜릿 기계를 접한 후 초콜릿 산업의 가능성을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미국의 비위생적인 생활 및 환경으로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이 한정돼 있었다는 점도 한몫 했습니다. 당시 경쟁사인 스위스의 고급 초콜릿은 상류층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는 데다 그 공정과정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어서 허쉬 초콜릿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초콜릿을 비롯해 시장에서 인기 있는 상품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밀튼은 우유와 설탕, 코코아가 배합된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그가 개발한 초콜릿은 당시 흔히 사용하던 카카오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을 사용해 더운 날씨에도 잘 녹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대량생산도 가능해지자 허쉬 초콜릿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군 보급품으로도 납품되었지요. 이 같은 공정을 통해 밀튼은 상류층의 사치품인 초콜릿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도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했습니다.

현재 허쉬 초콜릿은 기업의 빅히트 상품인 키세스를 비롯해 생산제품을 전세계 6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으며 미국 제과시장의 70%를 점유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