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통해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혁신적인 차량예약 서비스로 기업가치를 2년새 50배 이상 올린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 이 놀라운 성과를 낳은 그의 경쟁력은 실패였다고 합니다. 처음 창업한 회사는 2,500억 달러의 소송에 휘말려 문을 닫았고, 야심 차게 준비한 상품 영업은 하루 백 명 이상에게 거절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실패에서 가르침을 얻고 이를 통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 늘 전진하려는 진취적 행동을 취했습니다. 그 결과 39살 나이에 미국 4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공하게 되었죠.

Build the Great!
이 원대하고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몇 번이고 극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취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이번 시간에는 이 같은 진취적 행동을 배워볼 수 있는 두 기업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PROVE 2016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빈 칸에 들어갈 말을 맞춰보세요!

우리회사는 어떤 위기상황과 역경도 훌륭히 극복하고, Turn Around의 성공을 증명하는 한편, 희망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 새로운 비전을 설정했다. 이것이 ROVE 2016이다. 우리가 어떤 위기상황이라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 ① ]를 갖춘 [ ② ]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③ ] 및 인프라를 구축한 SUPEX Company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Downside Risk를 철저히 해소하고, Upside Potential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둘째, [ ④ ] 최적화를 통해 미래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기본기 강화 차원의 [ ⑤ ]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넷째, 인재확보 및 [ ⑥ ]를 Level-up해야 한다.
다섯째, 일혁신 고도화를 통한 [ ⑦ ]가 정착되어야 한다.

Turn Around Vision 달성을 위한 마음가짐

해외 기업이 알려주는 Turn Around Vision!

장애요인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Turn Around, 리바이스

젊음, 청춘, 자유의 상징인 청바지의 효시이자 세계적인 진(jeans) 브랜드로 사랑 받는 리바이스!
세기의 발명품이자 세계적인 브랜드의 탄생은 사실 ‘실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리바이스의 전신은 리바이 스트라우스&컴퍼니로 설립 초기에는 의류, 신발, 캔버스, 천막 등 각종 잡화를 판매하는 도매상이었습니다. 1850년대 초 서해안 일대에 금광이 발견되며 금을 캐려는 작업자들이 서부에 몰려들자 리바이스의 창업주 리바이는 그들에게 천막과 마차용 천을 판매할 목적으로 대량의 천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천막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량의 천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리바이 스트라우스&컴퍼니는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리바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낙심 대신 ‘어떻게 하면 저 엄청난 재고의 천을 목표대로 처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해진 바지를 꿰매는 광부들의 모습이 보였고 리바이는 질긴 천막 천을 재단해 해지지 않고 튼튼한 작업용 바지를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때가 덜 타게 하기 위해 염색한 바지의 푸른색이 광산의 뱀을 쫓아준다는 소문이 돌며 리바이의 청바지는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습니다.

청바지와 리바이스의 160년 역사가 시작된 셈이죠. 특히 1950년대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등의 스타들이 청바지를 착용한 채 히피문화를 선도하자 청바지와 리바이스는 미국 젊은이들의 자유, 개성, 야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자 청바지는 의류의 한 종류로 굳어질 만큼 일반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리바이스는 대중의 마음에서 떠나갔죠. 매출은 10년 동안 거의 늘지 않았고, 대중에게는 한 물 간 브랜드로 여겨졌습니다. 청바지를 대변하는 강력한 브랜드라는 힘이 기업에게는 신제품 개발에 소극적이 되도록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타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출시하고 적극적으로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반면 리바이스는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고 트렌드에도 무지한 채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활동만 고수했습니다. 더욱이 불필요한 회의, 만장일치에 따른 결정 등 지나치게 강압적인 기업문화도 리바이스의 몰락을 앞당겼습니다.

결국 리바이스는 2011년 새로운 CEO 칩 버그를 내세워 Turn Around Vision를 선포했습니다. 버그는 시장변화에 안일하게 대처한 리바이스의 과오를 인정하고 재기를 방해하는 장애요인들을 빠르게 파악해 새로운 전략을 펼쳤습니다. 리바이스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문제는 160년의 역사와 전통이었습니다. 이에 버그는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기존의 비효율적, 비정상적인 프로세스와 불필요한 관행은 없애거나 축소했습니다. 수십 년간 터키에 위치해 있던 신상품 연구 센터는 과감하게 샌프란시스코 본사 인근으로 이전했습니다. 역사를 강조하는 대신 옛 리바이스를 추억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읽어내고 ‘리바이스와 함께하는 삶’이라는 감성 마케팅을 통해 기성 세대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또한 신제품 개발에는 다양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매주 30개의 시제품을 생산할 정도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3년 리바이스의 매출은 상승세를 보였고 주주가치도 10억 달러 이상 올랐습니다.
160년 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리바이스는 Turn Around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려는 불굴의 의지로 Turn Around, 혼다

자동차, 모터사이클, 동력엔진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 전세계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혼다. 혼다 오토바이의 전설은 1946년 청년 혼다 소이치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히 무선 라디오의 소형 엔진을 발견한 소이치로는 엔진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오토바이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제작단계부터 쉽지 않습니다. 엔진을 부착한 자전거 타이어는 원인 모를 파열이 계속 발생했고, 애써 결과물을 만들어 시운전을 했을 때는 연료통이 새어 바지에 기름이 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이치로는 ‘시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제품의 부속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제품의 결함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야 목표로 했던 오토바이 자전거를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혼다가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업체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954년 소형 오토바이 매출이 급감하자 혼다는 첫 번째 도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제품 오토바이 개발을 위해서는 당시 4억5천만 엔의 최신 기계를 수입해야 하는데 혼다의 자본금은 6백만엔이 전부였습니다.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혼다의 기술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했는데 다행히도 기술력은 혼다의 창립이래 모든 경영진과 기술진이 추구해온 비전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최고의 오토바이 레이스로 불린 ‘만도 TT레이스’에 참여해 우승하자 혼다는 위기 극복은 물론 세계 오토바이 시장을 석권하게 됩니다.

오토바이의 성공을 토대로 승용차, 항공기 엔진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승승장구하던 혼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혼다는 두 번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일본 내 승용차 매출은 점점 감소하고 도요타 등 경쟁사의 거센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혼다의 사장인 가와모토 노부히코는 혼다의 위기 원인으로 지나친 기술 지상주의를 꼽았습니다. 기술개발에만 집착한 나머지 산업 및 시장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혼다는 성공 원천이던 기술 중심의 전략을 바꾸고 고객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오토바이 업체가 난립해 이륜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도 오토바이 레이서용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고, 배기가스 규제로 자동차 판매가 주춤할 때도 저공해 자동차 엔진을 개발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특히 핵가족 문화의 확산을 일찍이 예감하고 출시한 7인승 레저용차 오딧세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역경과 위기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혼다는 현재 2014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5위, 자동차회사에서는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리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