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필통

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그림 한 장이 있다. 지금은 존속하지 않는 부서인 독수리TF 용역사업(H09005)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보고했던 나의 첫 번째 공식적인 산출물 마지막 장표에 정리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회사의 비전이 완성된 2030년에 우리회사가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즈니스 시스템(Business System; 맥킨지앤컴퍼니가 제창한 개념으로, 제품이나 서비스가 개발되고 나서 시장에 나가기까지의 부가가치의 흐름을 시간 축으로 포착한 것)을 가설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도시를 대상으로 한 솔루션의 구성과 제공에 초점을 맞추어 MPR/S를 모두 새롭게 재정의하는 시도를 해 보았다. 의지와 열망을 담아, TSP(Total Solution Provider)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단순한 그림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각각의 블록 다이어그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또 우리 선후배님들이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벅차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이렇듯 나에게 TSP는 차가운 논리로만, 전략적 의미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정으로 흥분하게 하는 또 다른 그 무언가를 던지기에 연구에세이의 형태로 이번 글을 쓰게 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도서를 보다가 ‘연구에세이’라는 표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 내용을 아티클이나 저널처럼 다소 딱딱하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경험이나 감흥들을 섞어 비교적 자유롭게 정리한 방식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기억해 두었었다.

또한 글의 구성은 재즈음악의 구조를 차용하였다. 재즈는 Head – Solo – Head의 3단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첫 번째 Head에서 연주자는 작곡자의 원곡 악보대로 충실히 연주하여 원곡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Solo에 들어서서는 각 세션들이 그 동안 연습하고 해석했던 선율과 주법을 활용하여 즉흥연주를 하게 되고, 흔히 잼 세션으로 부르는 과정을 통해 앙상블을 만들어 내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Head로 돌아와 중간에 연주를 듣게 된 청중에게 다시금 원곡을 알려준다. 이번 글도 TSP 개념을 처음 만들던 시기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뒤 접하게 된 다양한 개념들 속에서 발견한 TSP와의 유사성을 이리저리 정리해 보고, 마무리는 TSP 수립 시 담으려 했던 철학들을 다시 떠올리는 3단 구성으로 적어 보았다. 자 이제 ‘The Jazz of TSP’를 연주해 본다.

시간을 거슬러 2007년 9월경의 순화빌딩으로 돌아가본다. 경영혁신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대리 2년차인 한 구성원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에는 우리회사의 비전체계 수립 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미션, 비전, 추구가치, 인재상, 일맛터 등 현재 널리 확산, 공유되고 있는 Core Value의 대부분이 많은 분들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나는 비전체계 추구가치 중 하나인 TSP에 대한 Why, What, How를 규명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상당히 무형적인 주제이고 정말 답이 안 그려지는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회사의 미션과 비전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어깨 너머로 볼 수 있었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을 더듬어 회사의 추구방향에 맞게 정리해내는 소위 TSP 초기 모델 개발을 위해 세상의 큰 흐름을 보려고 했었고 CEO의 관점이 되어 보려고 했었다. 이런 겁 없는 시도와 함께 수많은 문헌자료를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경영경제연구소, 컨설팅펌, 도서 등 100여개가 넘는 자료를 구하고 살폈던 것 같다. 이런 탐구와 모색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몇 가지 일화와 생각을 소개해 본다.

먼저, TSP 프로토타입을 구상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졌던 사상적 근간은 B2B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었다. 우리회사의 건설서비스를 제공받는 정부나 공공기관, 개발사업자, 발전사업자, 통신사업자 등을 큰 범주의 B2C 기업으로 본다면 우리회사는 B2B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고, 제조업 관점에서 정리되긴 했지만 아래에 제시된 그림을 놓고 볼 때 B2B 기업이 자신의 가치사슬만 인식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B2C의 가치사슬, 더 나아가 최종소비자의 그것까지 분석해서 미충족된 고객의 니즈(Unmet Needs)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혁신이 TSP의 기본적인 모습이라는 가설을 수립했었다. 다시 말해, 고객의 고객이 가지고 있는 니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국적 컨설팅펌인 부즈앨런해밀턴의 아티클 한 대목을 통해 TSP를 개념화하는 결정적인 영감을 받았다. 아티클의 제목은 ‘The Customer-Centric Organization: From Pushing Products to Winning Customers’. 각 산업이 기존에 제공하던 고객가치제안이 새로운 부가가치와 결합하여 고객 중심의 가치제안으로 재정의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이 표는 TSP라는 과정을 통해 고객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솔루션의 구체적인 모습을 가늠할 수 있게 했고, 고객의 문제 해결을 위해 그 동안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던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연관 산업의 서비스나 기존 영역에서 확장된 부가서비스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TSP는 고객의 총체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고, 기업 고객의 경우 운영 성과의 개선, 자산 효과성의 향상, 시장의 확대, 리스크 축소 등이, 개인고객의 경우 삶의 질 향상, 자산가치 증대, 효용가치 증대 등이 솔루션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객가치의 증분 만큼 기존 마진에 솔루션 프리미엄을 얹어서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고객에 대한 Share of Wallet을 확대하여 회사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회사가 TSP로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할 대상 즉, 고객은 ‘도시’이며 그러한 솔루션을 찾아내고 전달하는 활동을 ‘도시개발’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SK건설의 모든 구성원이 잘 알고 있는 비전 스테이트먼트가 바로 TSP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회사가 도시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솔루션의 범위를 고려한다면 비전은 ‘Global Top Tier City Developer’로도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하드웨어를 제공할 것이고 더불어 관리시스템이나 운영방안 등 소프트웨어도 함께 전달하여 도시가 더 효율적이고 편안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