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필통

서점에 가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지낸 최근 얼마간 단연 최고의 순간을 고르라면 윤석철 교수님의 저서를 만난 것이라 하겠다.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시는 그분은 명실상부한 경영학계의 거목이며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린다. 또한 10년 주기로 깊은 통찰이 담긴 저서를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삶의 정도(2011)로 이어지는 그의 사상은 경영학도인 나에게는 대산배달 최영의 총재가 입산 수도할 때부터 떼어놓지 않았던 병법서인 오륜서와 견줄 만하고, 어줍지 않은 나름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며 살아가는 40대 인간으로서는 선지자의 경지를 경험하는 것에 비견된다.

소위 제품의 가치(V)>제품의 가격(P)>제품의 원가(C)로 정리한 생존부등식과 함께 저서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것이 감수성이다. 윤교수는 최근작 “삶의 정도”에서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매체로 감수성, 상상력, 탐색시행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 중 가장 중요하고 선행해야 할 것으로 감수성을 꼽았고 국가, 기업 경영, 가정, 개인 차원으로 각각 설명하였다. 기업 경영 차원에서 감수성은 고객과 “주고받음”의 관계를 창조하기 위한 첫 단계의 필요조건이고, 경영자는 고객이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필요, 아픔,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오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경영학도로서, 기업의 일원으로서 가슴에 새긴 그분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종업원에게는 기쁨을, 소비자에게는 만족을, 기업에게는 이윤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일을 기획하고 설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업경영이 어렵고 따라서 일에 대한 탐구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상 3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일의 탐구, 그것이 경영학의 학문적 목표다.”

“기업가는 회사를 차린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원에게 일하는 기쁨을 주도록 업무환경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제품을 우선 만들 수 있어야 진정한 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경영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기업가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붉은악마와 복잡계

디지털 컨버전스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여러 분야에서 회자된 복잡계(Complex System)도 수렴의 과정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유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복잡계는 선형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흔히 공명현상과 함께 1940년 11월 7일 발생한 타코마협곡교(Tacoma Narrow Bridge) 붕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월드와이드웹에서 동영상을 검색해서 보면 잘 지어진 것 같아 보이던 멋진 현수교가 말도 안되게 휘청거리고 출렁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고에 대한 원인이 당시에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공기역학적인 불안정성과 소용돌이 형성이 조심스레 제기되었고, 이후 대규모 교량설계 시 구조공학과 함께 유체역학이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군대에서 구보를 하면서 다리를 건널 때는 구령을 붙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2000년 전 로마 군대에서도 대규모 행군 시 다리를 건널 때는 엇박으로 걷게 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국내 연구기관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복잡계를 통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는데, 산업생태계와 지식생태계에서 열린 혁신(Open Innovation)과 협업(Collaboration)을 추구하는 방안으로 “공진화”를 주창하며 복잡계 개념을 전파하였다. 특히, 지난 2005년에 있었던 복잡계 특강에서 동 연구소가 발제 한 내용 중에 흥미로운 표현이 있는데 제법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어 한번 소개해 본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을 붉은 물결로 뒤덮었던 붉은악마 신드롬을 복잡계 관점에서 은유(Metaphor)한 내용이다.

  1.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는 공명장(Resonance Field)이 형성되었다. 즉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 빠져들고 있었다.
  2. 외부에서 월드컵 개최라는 에너지의 유입 또는 충격이 있었다.
  3. 이미,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몇몇 모여 원조 붉은악마가 만들어졌다.
  4. 원조 붉은악마에 참여한 사람들간에 적극적 되먹임 고리(Positive Feedback Loop)가 생기면서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동했다.
  5. 원조 붉은악마들 사이에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 현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가 만들어지면서 작은 프랙털(Fractal)이 창발(Emergence)했다.
  6. 원조 악마들에서 시작된 작은 프랙털은 주변의 다른 국민들과 공명하고 선수들의 선전이 공진화(Co-evolution)하면서 더욱 큰 프랙털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다소 지적 유희 같아 보이는 표현이긴 하지만 마이크로가 매크로를 지배하여 거대한 하나의 수렴된 사회현상을 창출해 낸 사례임은 분명하고 당시 각종 기관에서 “국운융성의 새로운 역사”라고 흥분할 만한 빅 이벤트였다. 붉은 함성의 기상을 맛본 이후 맞은 2006년 월드컵 때는 통신사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개입해 적극적으로 붐을 만들려고 했으나 그만큼 잘 되진 않았던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림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질문과 해답에 대한 호기심으로 알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서툰 솜씨로 이리저리 엮어보았다. 세상의 지식체계에 비하면 너무나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발견이지만 그것들을 이해하고 구조화하고 맥락을 살펴보려고 노력하면서 어떤 이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융합, 통섭, 포용, 감수성, 복잡계로 소개한 다양한 분야에 걸친 개념들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컨버전스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로 이해할 수 있고, 자연, 과학, 인문, 사회, 경제 등 연관된 영역이 다양한 만큼 어떤 집단이, 의견이, 행동이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컨버전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이라면 당사자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학습과 심성의 겸비가 있어야 보다 나은 자아로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수렴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작의 공통분모는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한 인식이며 이런 차이 속에서 생존하거나 진화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유연함과 기존에 알고 있던 것 또는 구축해 놓은 것들의 경계에 서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활동의 실천이다. 일맛터 자유게시판에 댄서의 순정이라는 필명으로 9번째로 기고한 글에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와 관련하여 EBS 다큐프라임 “동과 서”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컨버전스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 동서양은 우주관에서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텅 빈 우주에 별들이 떠있으며 이들은 주변의 사물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동양인은 우주는 기로 가득 차 있고 이 기가 모여 사물을 이루며 주변의 기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동양인은 조수간만의 차가 달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서양인보다 훨씬 앞서 알고 있었다.
  • 동서양은 존재관에서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사물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정적인“Being”으로 표현한다. 동양인은 사물이 주변과의 수많은 인과관계와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며, 동적인 “연기(緣起, Arising)”로 표현한다. 이는 서정주의 시에 투영되어 있는데,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가 그것이다.
  • 동서양은 인간관에서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인간을 독립적이고 완결된 주체인 개인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Atom, Individual”로 생각한다. 그 사람이 친절(Kindness)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절한(Kind) 것으로 생각한다. 동양인은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생각하며, 전체적인 맥락인 장(場)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판단한다. 동양인에게 친절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이를 담고 있다.
  • 동서양은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나누어진 부분은 전체와는 다르다는 물체(Object)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전체도 개체의 성질을 그대로 가진 채 모여있는 집합(Collection)의 개념이다. 동양인은 나누어진 부분이 전체의 성질과 다르지 않은 물질(Substance)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부분이 전체로 합쳐지면 개별의 성질은 없어지는 일체(One-ness)의 개념으로 전체를 인식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단수와 복수가 발달하였고, “저기 있는 그 하나의 사과를 먹어라”라고 표현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단·복수를 일일이 구분하지 않으며, “가서 과일 좀 먹어라”라고 표현한다.
  • 동서양은 일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그림을 볼 때 사물 각각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며, 엄마가 아이랑 놀 때 명사를 많이 사용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좁은 구도로 얼굴이나 상반신이 많다. 교통사고 기사에도 직접적인 원인과 피해 정도만 기술된다. 동양인은 배경과 함께, 사물을 번갈아 가며 관찰하고, 엄마는 동사를 많이 사용하여 아이와 놀며, 넓은 구도로 전신이나 배경이 넓은 사진을 주로 찍는다. 사고 기사에는 피해규모와 함께 교통혼잡, 소통지연 등 훨씬 많은 원인과 결과를 다룬다. 차를 마실 때 권하는 말로 서양인은 개체를 강조하여 “More tea?”라고 묻지만 동양인은 “더 마실래?”라고 묻는다. 차와 사람의 관계인 동사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은 1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이 간격을 좁히는 일은 비단 지역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경영에도 그러한 것 같다. 기업의 성공도 회사 속에서의 직원의 행복도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방법으로는 달성하기가 어려워졌다. 분석과 관계가 공존해야 하고, 이성과 감성이 동행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Global Top Tier는 통상적인 활동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 통상적이지 않은 활동이 양립하기 힘든 사상의 결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회사와 개인, 리더와 구성원, 전사와 부문, 부문과 부문의 컨버전스가 마치 음양의 조화처럼 일어나야 할 것이다.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한발 더 다가설 때 그 출발점에 서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