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이벤트 의견제안
 
Home > 문화와 생활 > 소영씨의 북 Surfing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절대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형성되기 전(이라고 하니 왠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한 대형서점의 여행서적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다.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책이 레저 코너에 꽂혀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정말 멋진 분류방식이다. 우주인들의 수퍼컴퓨터인 지구가 폭파된 후, 우주공간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된 인간이 우주의 지적 생명체와 함께 히치하이킹을 떠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책으로, 말 그대로 꼬박 밤을 새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때 책이 나왔던 작은 출판사는 5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완간을 내지 못하고 망해버렸기 때문에 이 책은 내용이 끝나지 않은 채 머릿속에 들어있었고, 얼마 전 새로운 대형 출판사를 통해 번역서 5권이 깔끔하게 출간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엔 광고도 대문짝만하게 나고, 책도 여행코너가 아닌 외국소설 코너에 버젓이 꽂혀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에 그려보곤 하는 하나의 풍경이 있다. 그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아주아주 맑은 날,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청명한 한낮, 나는 창문이 있는 주방의 개수대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시원한 감촉을 남기며 접시의 비누거품을 씻어주고, 살짝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무심코 눈을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 그곳엔 저 너머 완만한 산등성이가 보이고, 그 위로 펼쳐진 하늘 저 멀리에 반짝거리는 작은 물체 하나가 떠 있다. 별인가, 생각하며 나는 계속 바라본다. 그것은 느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점점점 가까워진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 UFO구나. 나는 생각한다. 이윽고 점점 가까워진 그곳에서 왔을, 부들부들하고 쭈글쭈글한 몸을 가진 ‘그들’이 내 부엌 문을 두드린다.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이럴 수도 있다. 같은 순간, 무수히 많은 ‘그들’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부엌으로 동시에 찾아와 물 한 모금씩 얻어 마시고 갔더라 라는 맥 빠지는 설정이거나, 물 한 잔을 주었더니 조용히 물맛만 보고 돌아간다거나, 우주적 웰빙형 정수기를 새로 달아준다거나. 이쯤에서 상상은 코미디가 되곤 하지만. 부엌 창문을 통해 UFO를 맞는 상상은 나에겐 늘 변함없는 것이었다. 왜 하필 나는 그때 설거지 따위를 하고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무의식 깊은 곳 어디에서 발현된 리비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접시나 수도꼭지에 대한 성본능?), 또는 기억나지 않는 책이나 영화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만들어낸 상상일 수도 있겠다. 또는 몇 천만년 전 전생의 한 순간이 기억 저편에 남아있던 것일 수도(역시 나는 평민이나 하녀 출신이었던 거다!) 있다. 어쨌거나, 내 상상 속에서 만나는 ‘그들’은 별로 놀랍지 않은 모습이며, 모습 자체는 흉측스러울 지도 모르겠으나 절대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미추에 관한, 혹은 ‘눈은 반드시 두 개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순수하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이다. 광선검을 사용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아도, SF는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꼭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나는 솔직히 말해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때면 어쩌면 내 본적지는 별들 저 너머 다른 혹성이 아닐까 하는 공상도 해보긴 한다. 그렇긴 하지만, 톰 크루즈처럼 ‘외계인 종교’에 열혈신자가 되거나 ‘UFO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곳에 가입하거나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하거나 하는 것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내가 마이클 잭슨이었다면 애리조나주 사막에 UFO 착륙장을 건설했을까. 모르겠다.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영화 <콘텍트(Contact)>에서처럼 ‘우리만 살기엔 우주공간이 너무 넓지 않은가?’라는 다분히 대한민국 국민적이며 서울특별시 소시민적인 생각을 조심스레 해볼 뿐이다.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적인 외계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그들의 쓰레기소각장이라 해도, 지구가 그들이 만든 수퍼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유전자칩의 일부일 나는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뭐 그럴 운명인 것을, 어쨌든 고양이 방울 속에 또 다른 ‘은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꽤 두근거리는 일이다.

영화에서 끝없이 등장하는 우주전쟁. 우주전쟁이 하필 지구에서 발발한다는 것도, 별 볼일 없어 뵈는 지구가 전우주인이 걸핏하면 넘볼만한 천혜의 ‘아름다운 초록별’이란 것도 솔직히 나는 수긍이 안 간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근근히 살아있다는 것. 또는 우리가 근근히 살아있다는 것. 우리들은 가끔 하늘 위를 올려다보며 먹고 사는 것과 별개의 딴 세상에 대한 공상을 즐기곤 한다는 것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려는 사람의 배낭 속엔 꼭 있어야 할 필수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꼭 은하수로 히치하이킹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책이다. 게다가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완간도 되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영국에서 꽤 유명했던 이 작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후속편이 나오지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8월 중엔 동명의 영화도 개봉한다니 더욱 기대되지 않는가.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솔직히 그렇게 유명한 책인지는 이번 서평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78년 BBC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하여, TV드라마, 책, 음반, 게임 등 온갖 버전으로 확장되며 사랑 받아온 '코믹SF' 장르의 고전이라고 한다(왠지 속은 느낌). 하긴, 코미디의 힘이 때론 더 큰 법이다. 광대한 은하계를 배경으로 웃음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함과 함께, 엄청나게 높은 지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만성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로봇 마빈, 우연한 사고로 불멸의 생명을 얻고 온 우주의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견디는 와우배거, 지구가 만들어질 때 노르웨이의 해안을 설계해 상을 받은 경력을 추억하며 우주 종말의 위기를 막는 아르바이트에 매진하고 있는 슬라티바트패스트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다.

1권- 안내서에 대한 안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지구 행성을 떠나는 방법에 대한 아주 실질적인 정보들
2권-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우주가 끝나는 순간으로 쏘아올려져 부서진 행성의 잔해 위에 만들어진 레스토랑 밀리웨이스. 당신은 몇 번이고 원하는 만큼 이곳에 와서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폭발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호화스러운 만찬을 즐길 수 있다.
3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선사 시대 지구의 동굴 속에서 턱수염에 토끼뼈를 끼우고 있는 아서 덴트. 이제 그와 친구들은 우주를 파괴하려는 크리킷 행성의 계획을 저지해야 한다. 그들은 과연 우주를 구할 수 있을까?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4권-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지구가 파괴되기 바로 직전에, 작은 카페에 앉아 어떻게 하면 착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았던 여자의 이야기. 지구가 다시 살아난 대신 사라진 돌고래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권- 대체로 무해함
아서 덴트는 다시 한번 지구로 돌아오려다 샌드위치 제조의 대가라는 명예로운 직위에 안주한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노종혁 옮김, 새와 물고기
바로 이 출판사가 문제의 출판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처음만나게 해준 출판사. 그리고 커트 보네거트라는 존경스러운 블랙 유머리스트를 만나게 해준 출판사 말이다. 이 소설은 다행히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SF나 판타지로 구분되는 커트 보네거트의 여러 장편이 번역되어 있지만, 그 중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찾아오는 우연과 운명 같은 것들. 원작 소설의 표지에는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자 한 소설’이라고 써 있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고양이요람 역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이다. 원제인 ‘Cat's cradle’이란 직역으로 '고양이 요람'이고 실제 뜻은 '실뜨기 놀이'라고 한다. 양손에 실을 얹고 상대방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놀이를 실뜨기 놀이라고 그럴듯하게 부르고 있고, 그 행위를 영어로는 Cat's cradle 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바나나 공화국의 신흥 종교 보코논 교. 지구 멸망의 원인인 아이스 나인에 얽힌(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흥미진진 펼쳐진다.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GRYPHON BOOKS

<멋진 징조들>은 '천국 가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묵시록'이다.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 막바지인 20세기 말. 이 세상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은 코앞에 다가왔지만 한창 '작업중'이어야 할 천사와 악마는 인간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전쟁을 막으려 한다. 이 와중에 세상의 종말을 완성지을 적그리스도 '아담'이 태어나는데, 문제는 미국 외교관 아들로 태어나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야 할 이 녀석이 실수로 영국 시골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게 된 것이다, 라는 서두. 영국 최고의 판타지 작가라는 테리 프래쳇과, 코믹스, 아동서, 그래픽노블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닐 게이먼이 유명해지기 전에 '장난 삼아' 함께 쓴 이 책이 오히려 두 사람의 대표작이 되었다고 한다.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너머
차분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외계인 침입 이야기 <바디 스내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친지가 본인이 아니라 가짜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땅 속에 묻혀있던 거대한 트라이포트 로봇이 돌연 땅을 뚫고 나와 열선총을 쏘거나, 거대한 비행접시들이 도시 상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만이 우주전쟁이 아닌 것이다. 바로 내 이웃, 내 가정에서 슬그머니 벌어질 수도 있는 외계인의 침입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가드너 도조와 편집, 신영희박현주 옮김, GRYPHON BOOKS
21세기 SF도서관-1

가드너 도조와 편집, 이수현박현주황나래 옮김,
GRYPHON BOOKS 21세기 SF도서관-2

SF(공상과학)라는 장르는, 시대가 변하면 더 이상 ‘공상’이 아닌 현실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SF의 고전들을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요즘 출간되는 신선한 SF를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1983년부터 매년 그 해의 가장 훌륭한 중단편을 가려 엮어 내고 있는 가드너 도조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SF편집자라고 한다. SF의 전통적인 소재인 UFO, 외계 생명체, 시간여행 등이, 비교적 최근 들어 자주 다뤄지는 나노기술, 유전공학 등의 소재와 함께 신선한 기법으로 버무리기도 했다. 따끈따끈한 SF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실컷 만나보자.
mailto